🐙첫번째는 게이맨들 가득한 트럭 위에서 나대는 여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참여했고 두번째 퀴퍼는 첫번째 퀴퍼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또 하고 싶었어요.
🦔중간에 사람들한테 메세지 받아서 소리지르면서 했던 것 생각이 났어요. 그리고 퀴퍼 트럭위에 올라온 사람들도 각자가 좀 더 연결지을 수 있는 메세지들을 읽었던 것.🐳 그래서 춤을 추는데 목이 쉬었던 기억.
🐳 제가 경험해 온 상처와 억압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동시에 같이 걷고 “내 몸은 전쟁터”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조금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. 그래도 내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, 내 존재가 지지받고 있구나, 같은 것들.🍇🍇
🍇그날 행진 행렬 뒤에서 누가 성추행해서;; 성범죄자 꺼져라!🦔🦔🦔🦔 이런 구호 외치고 그랬어요.
🐙그만큼 노출있는 옷을 입고 대중교통을 탄 건 처음이었는데 친구들이랑 함께 있어서 창피하거나 주눅들지 않아서 좋았어요. 지하철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랑 친구들보고 어떤 기독 아줌마가 존ㄴ ㅏ사탄 보듯이 히이익~~!!
🐹첫번째였나 두번째였나 퍼레이드 말미에 가니깐 트럭 따라오는 분들이 다들 윗도리를 벗고 브라만 입고 있는 거예요!!!🐳🐳 🐳헉 허걱 왜냐면 더우니깐!!! 마치 락페스티벌에서 남자애들이 그냥 윗도리 훌렁 벗는 것처럼. 그래서 와 여기가 진짜 안전 공간이 되었구나 싶어서 기뻤던 기억. 🦔🦔🦔🦔🍇
🐙페당이 참 여러 압력에서 괴로웠다는 생각이 드네요.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에서 늘 선택하는 과정이었단 생각이 들어요.
🐳 구호 같이 외치면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노래 따라 부르고 했던 게 엄청 짜릿했어요. 갑자기 만난 대학 친구들이랑 구호 외치면서 주고받던 눈빛이랑 같이 노래하고 웃고 떠들던 장면들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요.
🦔 그 때는 당사자라고 정체화하지 못했지만, 이제 퀴어당사자가 되었는데! 그 때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? 18년 퀴퍼처럼 무언가 쏟아내고 펼쳐낼 수 있는 것들이 요즘 필요한 것 같아요. 트랜스인권에 연대하는🐳🐳 페미니스트로 트럭을 하게 된다면 좋겠다.🍇🍇 아무튼 친구들과 춤을 추고 싶어요🐳
🍇퀴어이자 페미로서 “당당”하게 즐겁게 기뻐하고 축하하면서, 춤추면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경험🦔🦔🦔🦔🦔🦔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.
🐳 해외에서도 퀴퍼 몇 번 갔었는데, 역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와 함께하는 퀴퍼에서만큼 나의 한국에서 나고 자란!! 퀴어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공감받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.🍇
🐙그때는 에너지가 글케 많았음. 전날 트럭 꾸미고 퍼포 준비하면서 우리 많이 싸웠던 기억 나요. 끝나고 사람들 한명한명 보면서 손 흔들었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. 퀴퍼는 영원히 제 자랑거리일거에요.
🦔중간에 사람들한테 메세지 받아서 소리지르면서 했던 것 생각이 났어요. 그리고 퀴퍼 트럭위에 올라온 사람들도 각자가 좀 더 연결지을 수 있는 메세지들을 읽었던 것.🐳 그래서 춤을 추는데 목이 쉬었던 기억.
🐳 제가 경험해 온 상처와 억압들을 다시 들여다보는 동시에 같이 걷고 “내 몸은 전쟁터”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조금은 해방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. 그래도 내 경험이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, 내 존재가 지지받고 있구나, 같은 것들.🍇🍇
🍇그날 행진 행렬 뒤에서 누가 성추행해서;; 성범죄자 꺼져라!🦔🦔🦔🦔 이런 구호 외치고 그랬어요.
🐙그만큼 노출있는 옷을 입고 대중교통을 탄 건 처음이었는데 친구들이랑 함께 있어서 창피하거나 주눅들지 않아서 좋았어요. 지하철 역에서 내리자마자 나랑 친구들보고 어떤 기독 아줌마가 존ㄴ ㅏ사탄 보듯이 히이익~~!!
🐹첫번째였나 두번째였나 퍼레이드 말미에 가니깐 트럭 따라오는 분들이 다들 윗도리를 벗고 브라만 입고 있는 거예요!!!🐳🐳 🐳헉 허걱 왜냐면 더우니깐!!! 마치 락페스티벌에서 남자애들이 그냥 윗도리 훌렁 벗는 것처럼. 그래서 와 여기가 진짜 안전 공간이 되었구나 싶어서 기뻤던 기억. 🦔🦔🦔🦔🍇
🐙페당이 참 여러 압력에서 괴로웠다는 생각이 드네요.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이에서 늘 선택하는 과정이었단 생각이 들어요.
🐳 구호 같이 외치면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노래 따라 부르고 했던 게 엄청 짜릿했어요. 갑자기 만난 대학 친구들이랑 구호 외치면서 주고받던 눈빛이랑 같이 노래하고 웃고 떠들던 장면들이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요.
🦔 그 때는 당사자라고 정체화하지 못했지만, 이제 퀴어당사자가 되었는데! 그 때 좀 더 빨리 알았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? 18년 퀴퍼처럼 무언가 쏟아내고 펼쳐낼 수 있는 것들이 요즘 필요한 것 같아요. 트랜스인권에 연대하는🐳🐳 페미니스트로 트럭을 하게 된다면 좋겠다.🍇🍇 아무튼 친구들과 춤을 추고 싶어요🐳
🍇퀴어이자 페미로서 “당당”하게 즐겁게 기뻐하고 축하하면서, 춤추면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경험🦔🦔🦔🦔🦔🦔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.
🐳 해외에서도 퀴퍼 몇 번 갔었는데, 역시 한국에서 페미니스트와 함께하는 퀴퍼에서만큼 나의 한국에서 나고 자란!! 퀴어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공감받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.🍇
🐙그때는 에너지가 글케 많았음. 전날 트럭 꾸미고 퍼포 준비하면서 우리 많이 싸웠던 기억 나요. 끝나고 사람들 한명한명 보면서 손 흔들었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. 퀴퍼는 영원히 제 자랑거리일거에요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