👻사실 시작은 잘 기억나지 않아요 정신을 차려보니 약봉지와 약들과 함께 있었어요
🌷women on web의 곰퍼츠 선생님이 퍼포먼스 하자고 컨택해서 진행하던 와중 네덜란드의 의료진과 원격으로 화상 통화를 하며 로봇으로 약을 전달받은 한국인 퍼포머가 꿀꺽! 하자는 플랜을 거부하고 약간 변조?변주?되어 나몸불법이 되었지요.
🐭 언니들이 하길래 따라 갔습니다.
🥕 곰퍼츠 선생과 함께라면 뭔갈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곰선생께서 제안하신 것이 시혜적으로 해석되거나 (혹은 시혜적이었거나) 원격의료 등의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. 그래서 퍼포를 조금씩 뜯어고치다보니 그냥 새로운 퍼포가 나왔다. 근데 그래서 좋았지.
🍷당시 하루에 낙태하는 사람이 3000명 추산이라서 24시간으로 나눠서 125명으로 상징적 숫자로 정했어요. 연대의 의미로 함께 알약을 삼키는 / 그런데 누군가는 진짜 미프진을 먹고 누군가는 비타민을 먹어서 서로를 보호하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다.
🌷퍼포 당일 대박 수상한 🐭ㅋㅋㅋㅋ🌷스터디카페에 모여서 (햇빛이 안드는 골방느낌👻) 포퍼먼스용 약상자를 열심히 접었음
👻그 뒤에 그것들을 가지고 보신각에 갔는데 비가 왔어요. 그리고 저는 참여자가 오면 신청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해 동그라미하는 역할을 했는데 여자들이 다가올 때면 기분이 설렜습니다..
🐭갔더니 아는 사람이 일단 엄청 많았어요 페당 언니들 말고도 중학교 동창 친구들을 거의 6,7년 만에 본 거였는데 그때 ㅇㅇ중 완전 메갈중이었네 하면서 웃었던 거 기억나
👻그때 서로 인사나누고 소개해주고 하는 장면이 이상한 사교 파티 같다고 느껴졌습니다!
🍷발언들이 너무 좋았어 다들… “이건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, 지금 처음 하는 얘기인데요" 하면서 시작했어. 그리고 다같이 선언문 읽을 때 무척 울컥했던 기억…
🐭맞아 다들 하나처럼 잘 읽어서 매우 신기하고 감동이고 뿌듯했다! 자랑스러웠다
👻저는 혀에 알약을 붙이고 사진이 찍히는 일정 시간동안 기다리던 시간이 아주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어요.
🌷선언문 읽을때 정말..쩌렁쩌렁 짜릿 모먼트.
🍷끝나고 미국 기독교 신문에서 125명의 사탄? 🐭한국 여자들이 낙태약을 먹었다고 뉴스 남.
🥕랟팸과 한창 분리되고 대립되는 시기에 쓰까 단체들 사이에서 외로움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.
🍷당시에 한 번 연기가 되었었어요. 한 번 미뤄지면 영영 못하게 될까봐도 걱정되고, 다시 언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화용이 한 명이라도 공격당할까 걱정되면 안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결정했던 기억이 나.
🌷딸과 같이 구경온 어머니 분이 딸한테 땡떙이 너를 위해 언니들이 이 퍼포먼스 하는거야~하시는 것을 듣고 많이 감동했다.
🥕나도 애기랑 같이온 분 생각나. 신청하고 온 분은 아니고 지나가던 분이었던 것 같은데 와서 계속 보시고 손피켓같은 것도 받아갔었어.
👻흩어지는 무렵에 발언자 A가 발언자 B에게 용기내 다가가 발언 잘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뒤에서 봤다. 그분은 자신이 임신중단이 불법이라서 태어난 사람인데 임신중단을 했다고 하셨던 것 같음.
🥕이 때 처음으로 우리 행사에서 비건 어쩌구를 했었는데, 비건 비타민을 별도로 준비했었다. 지금 생각해보면 비건 옵션을 두는게 아니라 그냥 모두 비건 비타민으로 해도 좋았겠다.
🌷그냥 그때 당시 페당의 모든 활동이 그랬듯이 함께한다는 느낌이 아주 강했음. 팀 안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들, 항상 참여해주는 사람들, 응원해주는 인터넷의 수많은..네 티 즌..🐭그리고 열심히 찾아와서 기록해준 기자분들.
🐭세월이 흘러서 내가 딸이 생기면 딸에게, 할머니가 되면 손녀에게 👻, 아니면 아들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나 이런 것도 해봤다 얘기해주고 싶은 일. 언제까지고 용기로 남을 기억이다.🍷🍷
👻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지점이 따로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.
🍷일단 당시 낙태죄 폐지가 안되었었는데 불법적인 행동을 대놓고 한다는 점이 모두에게 은밀한 공범의 쾌감?을 주었던 것 같다.
🌷엄청난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련하고 슬프고 뿌듯하고 난리남..어쨋든 난 그때 내가 우리가 하는 활동에 투자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고 가장 바쁘고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.
🌷women on web의 곰퍼츠 선생님이 퍼포먼스 하자고 컨택해서 진행하던 와중 네덜란드의 의료진과 원격으로 화상 통화를 하며 로봇으로 약을 전달받은 한국인 퍼포머가 꿀꺽! 하자는 플랜을 거부하고 약간 변조?변주?되어 나몸불법이 되었지요.
🐭 언니들이 하길래 따라 갔습니다.
🥕 곰퍼츠 선생과 함께라면 뭔갈 할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곰선생께서 제안하신 것이 시혜적으로 해석되거나 (혹은 시혜적이었거나) 원격의료 등의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다. 그래서 퍼포를 조금씩 뜯어고치다보니 그냥 새로운 퍼포가 나왔다. 근데 그래서 좋았지.
🍷당시 하루에 낙태하는 사람이 3000명 추산이라서 24시간으로 나눠서 125명으로 상징적 숫자로 정했어요. 연대의 의미로 함께 알약을 삼키는 / 그런데 누군가는 진짜 미프진을 먹고 누군가는 비타민을 먹어서 서로를 보호하는 의미의 퍼포먼스를 하기로 했다.
🌷퍼포 당일 대박 수상한 🐭ㅋㅋㅋㅋ🌷스터디카페에 모여서 (햇빛이 안드는 골방느낌👻) 포퍼먼스용 약상자를 열심히 접었음
👻그 뒤에 그것들을 가지고 보신각에 갔는데 비가 왔어요. 그리고 저는 참여자가 오면 신청자 명단에서 이름을 확인해 동그라미하는 역할을 했는데 여자들이 다가올 때면 기분이 설렜습니다..
🐭갔더니 아는 사람이 일단 엄청 많았어요 페당 언니들 말고도 중학교 동창 친구들을 거의 6,7년 만에 본 거였는데 그때 ㅇㅇ중 완전 메갈중이었네 하면서 웃었던 거 기억나
👻그때 서로 인사나누고 소개해주고 하는 장면이 이상한 사교 파티 같다고 느껴졌습니다!
🍷발언들이 너무 좋았어 다들… “이건 누구한테도 하지 못한, 지금 처음 하는 얘기인데요" 하면서 시작했어. 그리고 다같이 선언문 읽을 때 무척 울컥했던 기억…
🐭맞아 다들 하나처럼 잘 읽어서 매우 신기하고 감동이고 뿌듯했다! 자랑스러웠다
👻저는 혀에 알약을 붙이고 사진이 찍히는 일정 시간동안 기다리던 시간이 아주 오랜 시간처럼 느껴졌어요.
🌷선언문 읽을때 정말..쩌렁쩌렁 짜릿 모먼트.
🍷끝나고 미국 기독교 신문에서 125명의 사탄? 🐭한국 여자들이 낙태약을 먹었다고 뉴스 남.
🥕랟팸과 한창 분리되고 대립되는 시기에 쓰까 단체들 사이에서 외로움도 많이 느꼈던 것 같다.
🍷당시에 한 번 연기가 되었었어요. 한 번 미뤄지면 영영 못하게 될까봐도 걱정되고, 다시 언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는데 화용이 한 명이라도 공격당할까 걱정되면 안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해서 결정했던 기억이 나.
🌷딸과 같이 구경온 어머니 분이 딸한테 땡떙이 너를 위해 언니들이 이 퍼포먼스 하는거야~하시는 것을 듣고 많이 감동했다.
🥕나도 애기랑 같이온 분 생각나. 신청하고 온 분은 아니고 지나가던 분이었던 것 같은데 와서 계속 보시고 손피켓같은 것도 받아갔었어.
👻흩어지는 무렵에 발언자 A가 발언자 B에게 용기내 다가가 발언 잘 들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뒤에서 봤다. 그분은 자신이 임신중단이 불법이라서 태어난 사람인데 임신중단을 했다고 하셨던 것 같음.
🥕이 때 처음으로 우리 행사에서 비건 어쩌구를 했었는데, 비건 비타민을 별도로 준비했었다. 지금 생각해보면 비건 옵션을 두는게 아니라 그냥 모두 비건 비타민으로 해도 좋았겠다.
🌷그냥 그때 당시 페당의 모든 활동이 그랬듯이 함께한다는 느낌이 아주 강했음. 팀 안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단체들, 항상 참여해주는 사람들, 응원해주는 인터넷의 수많은..네 티 즌..🐭그리고 열심히 찾아와서 기록해준 기자분들.
🐭세월이 흘러서 내가 딸이 생기면 딸에게, 할머니가 되면 손녀에게 👻, 아니면 아들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나 이런 것도 해봤다 얘기해주고 싶은 일. 언제까지고 용기로 남을 기억이다.🍷🍷
👻나는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지점이 따로 있었을 뿐이었던 것이었다.
🍷일단 당시 낙태죄 폐지가 안되었었는데 불법적인 행동을 대놓고 한다는 점이 모두에게 은밀한 공범의 쾌감?을 주었던 것 같다.
🌷엄청난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련하고 슬프고 뿌듯하고 난리남..어쨋든 난 그때 내가 우리가 하는 활동에 투자한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고 가장 바쁘고 행복하게 지냈던 것 같습니다.